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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Sunday sermons

 

2020.8.16_8 셋째 주일 말씀

사도행전 17 26~31< 218>,

v.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혈통으로 만드사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v.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v.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v.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v.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v.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그럼 오늘 시간,

저는 사도행전 17 26~31 말씀들을 가지고서

창조주와 심판주 하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말씀의 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루는 호두 농사를 짓던 농부가

하나님께 이처럼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동안 뜻대로 날씨가 바뀌도록 해주세요

 

농부는 날이건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이처럼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농부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하나님은 농부에게 날씨를 조정할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때부터 농부는 자신의 마음대로 날씨가 바꾸기 시작하면서

햇볕을 원하면 햇빛이 내려 쬐었고,

비를 원하면 비가 내렸습니다.

더욱이 여문 호두알을 떨어뜨리는 천둥과 바람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니 모든 일들이 정말 순조롭게 되어

농부는 그늘아래서 잠만 자고

평안하게 지내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가을이 오게 되자,

호두는 상상할 없을 만큼 풍년이었습니다.

 

기쁨에 들뜬 농부는 산더미처럼 쌓인 호두 하나를

깨트려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안에는 알맹이가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실망한 농부는 껍데기 호두를 들고서

알맹이가 없는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도전이 없는 것에는 알맹이가 들지 않는 ,

폭풍 같은 방해가 있고

가뭄 같은 아픔도 있어야

껍데기 속의 영혼이 깨어나 열매가 여무는 것이란다.”

 

어느 시대이건,

어느 나라이건,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건

각자 자신들만이 믿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이 수도 있고,

세상적인 지식이 수도 있고,

세상적인 경험과 사람 관계가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믿는 것들을 가지고서

자신들만의 기준과

자신들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신을 만들어

그것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하든,

더욱이 어떤 것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더라도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리지를 못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종교들이 생겨나고

종교들이 사라지면서

그들이 추구한 것은 자신들의 평안함이었고

그것에만 관심을 가지고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시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와 올바른 지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그들을 위협하는 일들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생각을 가질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

사도가  여러 곳에 복음을 전하고,

더욱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예수 복음을 전하면서

유대인들의 많은 방해와 위협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을

이것은 정말 말로 표현할 없음만큼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피해 그리스 북부에 있는

베뢰아라는 지역을 떠나

아덴이란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덴이란 이곳에는

오히려 새로운 사상과 지식이 가득했고

그들 나름대로의 종교성 또한 너무나도 강했습니다.

 

종교성이란,

자신이 가진 주장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고,

자신이 각자 만든 우상에 무엇보다도 기쁨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곳에서 바울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자신들이 만든 것으로 인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지라도

하나님 말씀,

창조주와 심판주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듣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창조주 하나님임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고

오늘 본문 가운데 26절과 27절에서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쉬운 성경입니다.

v.26,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부터 세계 모든 인류를 만들어 위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시대와 지역의 경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v.27,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 찾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찾을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오늘 날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안할 때보단,

오히려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경험할

자신들만의 신을 찾습니다.

 

바로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올바른 하나님,

참된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가진 성경 말씀 가운데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성경은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주가 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만드신 참된 ,

바로 야훼 하나님을 올바로 경외할 ,’

그리고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할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이 시작되었음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유전공학 , ‘Genetic Engineering’ 통해 환경에 강한

씨앗 종자를 개발하거나,

아니면 질병에도 강한 생명체를 만들어서

우리가 살아갈 도움이 있는

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어도

모든 것의 시작은 이미 있는 것에 대한

연구와 개발일 ,

그리고 이미 있는 것들을

나아지도록 노력하는 일일

사실 우리 자신뿐 아니라

포기에도 생명을 만들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반드시 하나님을 기억하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하는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창조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 삶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항상 하나님 찾기를 정말 원하고 바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은 오직 말씀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세상적인 ,

우리들만의 생각과

우리들만의 계획,

혹은 우리가 지은 성전이나 건물에 너무 비중을

두지 말고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그리고 공급하심에 힘입어 말씀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하든,

더욱이 우리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하든지 간에

우리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없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이든, Non 그리스도인이든 간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직접 제공해 주시는 없이는

순간도 제대로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 심판주 하나님을 증거하는

복음의 핵심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의 중심 가운데 우리가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우리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에서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v.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v.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세상 가운데서 모두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면

보혈의 공로로 누구든지 용서를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의 촉구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되어도 우리가 회개하지를

않는다면 하나님은 분의 공의,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 22~27절은 이처럼 말씀합니다.

v.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v.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v.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말을 듣고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v.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v.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속에 있게 하셨고

 

v.27,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그럼으로 우리들은

복음을 조금도 가볍게 여겨서는 됩니다.’

 

비록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여러 가지 질병과 환경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혼란스럽고

불안함 가운데 놓여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는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회개하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죄에 대해선 좀더 영적으로 민감해져서

하나님께서 정말 싫어하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결국 우리가 속한 모든 곳에서 죄로

분열되고 죄로 서로 나눠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세상이 혼란스럽고

사람들이 서로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 놓여 있을

신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이 전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써

때와 필요에 따라 것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이시고,

모든 것을 공평하고 의롭게

그리고 올바르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욱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고서

우리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해 움직여 주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분만이 참된 창조주와 심판주로써

우리 모두가 반드시 예배 드려야

유일하고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으로 현재 우리 성도님들의 가운데

크고 작은 어려움과 괴로움이 있을지라도

각자 오직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서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심판주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있도록

2000 인간의 몸을 가지고 세상에 직접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여

우리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함으로

놀라우신 우리 주님의 귀한 은혜를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복된 주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시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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