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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Sunday sermons

 

2021.3.7_3 첫째 성찬 주일 말씀

고린도후서 7 5~10< 292>,

v.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v.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v.7, 그가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v.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줄을 앎이라.”

 

v.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v.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그럼 오늘 주일에는

본문 고린도후서 7 5~10 말씀들을 가지고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

이와 같은 제목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말씀의 귀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1856년에 미국에서 가장 콤스톡 광산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가 가진 가운데 가장 쓸모 없게 보인 네바다 버지니아 시티 있는 산을

달러라는 헐값에 팔았습니다.

 

하지만 , 산에서 당시에 5 달러라는

미국 최대 규모의 금강을 발견하게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발명가였는데,

어느 그의 집과 연구실에 불이

당시 손실만 200 달러가 넘는 재산을

태워버리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나이도 67세였기에 주변 모든 사람들은 재기할 없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낡은 건물과 시설에 연연해 하는 좁은 소견을 깨우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청소해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서 내게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가 바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었습니다.

 

그는 화재를 딛고 일어서서

전보다 더욱 훌륭한 연구실을 지었고,

과거보다 더욱 의욕을 가지고서 활동을 했습니다.

 

분명 세상 가운데서 걱정, 근심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도 없습니다.

 

더욱이 주님 안에서 근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바울의 근심을 통하여

성도로써 가지 다른 근심을 알아보기 원합니다.

 

번째로, 세상 근심, 세상적인 목적만을 위한

근심은 절망과 죽음으로 이끌어 갑니다.”

 

세상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거기다 밖으로는 싸움이 있고,

안으로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다 보니 육체적으로는 편하지 못하여

지치고 탈진하게 되며,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피곤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기는 방법은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사실 고린도후서라는 편지는,

먼저 고린도 성도들을 나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 성장을 방해하는 세상적인 근심과

염려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 자신도 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을 보시면 사도 바울은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번역입니다.

v.5,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의

육체는 조금도 쉬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난을 겪었습니다. 밖으로는 싸움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밖으로 어려움과 괴로움이 있었기에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더욱이 복음을 전할

아무에게도 악으로 대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았으며,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었는데도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너무나도

힘들게 했기에

고린도후서 편지를 써서 고린도 교회에 보내

나무랐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 받는다면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교회 안에서 잘못을 지적 받는다면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를 떠나

다른 곳에서 신앙 생활을 조용하게 시작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겠다고

행동으로 옮기려 것입니다.

 

사실 세상적인 근심,

세상적인 목적만을 위한 근심을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되었을 때에는

염려와 걱정만 하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스스로 원망하거나

후회만 함으로

결국 절망 가운데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점점 의기 소침해지고,

 세상만을 바라보면서

거기다 주위 사람들만 바라보면서

점점 절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일로 염려하고,

세상 일에 근심하는 이런 종류의 근심들은

반드시 주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먼저 지킴으로,

인간적인 방법을 시작하기

하나님의 뜻과 기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깨우치고,

무슨 일에서든지

말씀에 자기 자신이 사로잡히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7절은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번역 성경입니다.

v.6, 그러나 실의에 빠진 사람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디도를 돌아오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v.7, 그가 돌아온 것으로만이 아니라,

그가 여러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우리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그리워하고, 내게 잘못한 일을 뉘우치고,

나를 열렬히 변호한다는 소식을 그가 전해 때에,

나는 더욱더 기뻐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은,

그리고 후회했던 모든 일들은 기쁨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메리큐스 마네라는 부인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분의 남편은 사업에 부도를 내고서

어디론가 몸을 숨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정은 모든 살림을 잃어버린 ,

알거지가 되어 결국 길거리에 앉게 것입니다.

 

부인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문방구에서 연필 하나를 훔치다 들켰습니다.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자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아이들을 재운

주방에 가서 가스를 켰습니다.

그리고 누웠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돌아보사 근심 모두 맡으시네.”

라는 찬양이 들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마네 부인은 갑자기

내가 죽을 생각을 하면서

기도할 생각은 못했는가 생각하다

급하게 아이들을 깨워서 밖으로 밀어내고

주방에 가서 가스를 잠갔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용기가 나기 시작하였고,

즉시로 시골에 내려가 하나를 얻어 삶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자녀들은 모두 멋지게 성공을 하게 되었는데,

분의 자서전인 근심이여 안녕이라는 마지막

결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죽을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이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있는 용기로 바꾸어 보십시오!

  번의 탄식보다

번의 기도가 당신에게 기적을 가져다 것이요.

번의 절망보다,

번의 믿음이 당신의 운명을 바꾸어 것이요.”

 

사실 우리들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그리고 온전히 믿는다면,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방법과 계획을 실행하기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우리 주님께 계속해서 물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는

낙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시고자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보내셔서

반드시 나아가야 방향을 깨닫도록

올바른 믿음의 조언과 도움을 주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다 보면

작은 일에 부딪칠 때가 있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마음에 상처를 받아

미워하는 마음도 생길 있습니다.

 

이러한 ,

단지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이익과 목적만을 바라보면서 나아가게 된다면,

결국 근심과 절망 가운데 빠져서

자신의 삶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에 반드시 올바른 동기와

정직한 동기를 가지고,

 세상적인 목적만을 가지고서

이기적이고 잘못된 길에 빠지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 가는 모든 길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서

모든 다툼에서 나와

인간의 방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방식으로 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시간 세상적인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의 방식,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나아가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통해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사실 세상 근심,

세상적인 목적만을 위한 근심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결국 죄에 빠져서

자기 자신이 하는 일들과

자기 자신이 나아가는 길이 올바른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건 하나님의 뜻대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회개의 나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죽음을 가져오기 때문이고,

세상의 모든 슬픔은 바로 죄의 본질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세상의 슬픔은 죄로 인한 결과 때문에

일어나는 슬픔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자아가 강한 사람은

하나님께 회개하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죄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은

죄로 인하여 슬픔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께서는

우리들에게 이처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9절과 10절입니다.

v.9, 지금은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당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으니,

결국 여러분은 우리로 말미암아 손해를 것은 없습니다.”

 

v.10,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 사도의 책망을 들었을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고린도 교회도 하나님 말씀을 들었을

그들은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안에서 주님의 길을 다시금 사모하게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됨으로 자신들 안에서 행해진 모든 죄악,

하나님과 친밀했지만

하나님을 함부로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만 맞췄던

모든 죄악으로부터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께 올바로 향하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회개의 삶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에 대하여 올바로 분별하고

판단하도록,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번의 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운데 회개가 매일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 스스로에 의해 완전하게 이루어질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덕분입니다.

 

더욱이 회개는 구원을 이루는데 필수적입니다.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가 씻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하지만,

세상 가운데서는 여전히 알고도 지은 ,

모르고도 지은 죄를 범하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우리들이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불순종에서 벗어나

순종의 가운데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과거의 사람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육체를 모든 세상적인 욕심과 함께

십자가에 박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육신의 욕심을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용서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토록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새롭게 하심을 열망하고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우리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찬양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모두가 세상적인 일로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할 지라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구원에 확신을 가지고서

예배에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에 임하게 되어

하루 하루 주어진 시간들 속에서

승리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 자신을 올바로 돌아보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회복하여,

우리 주님이 주신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들을

우리 각자 아름답게 나누면서,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의 은혜로 살아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럼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평상시 느끼는 세상적인 근심으로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없습니다.

 

세상적인 근심으로는

낙심하고 좌절한 마음을 회복시킬 없습니다.

 

세상적인 근심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앙과 믿음 때문에,

가족의 신앙과 믿음 때문에,

그리고 이웃의 신앙과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올바른 뜻대로 회개하면서 나아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서 혼자

근심하고 괴로워하지만 마시고,

어떠한 순간에서든지,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깨달아,

염려만 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부르짖으면서

항상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고백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지식과 감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모든 생각을

지켜주셔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복되고 귀한 주일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의 걱정과 근심이 해결되어져서,

기쁨과 감사로 힘써 살아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시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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