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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설교

Wednesday sermons

 

2021.3.10_3 번째 수요 저녁 말씀

 마태복음 18 15~20< 30>,

v.15,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형제를 얻은 것이요

 

v.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v.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v.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v.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시라

 

v.20, 두세 사람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럼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18 15~20 말씀들을 가지고서

그리스도 제자로서의 올바른

이와 같은 제목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말씀의 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만약 수컷 병아리가 알을 까고 나오면

양계장에선 상품 가치가 없다고 해서,

  껍질들과 함께 방금 태어난 수컷 병아리들을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고서,

분쇄기까지 이동을 시킵니다.

 

그리고 두껍고 날카로운 톱니 바퀴가 촘촘하게 맞물려 있는 분쇄기에

잔인하게 넣어 버립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마디로

상품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습니다.

  세상 가운데 태어났기에

무엇보다도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생명의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함께 했던 모든 것들과

지옥 불에 떨어져 버리고 말아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사실 오늘 본문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제자로서,

그리고 성도로써

올바른 영적 생활 윤리 또는,

천국 백성의 권세 있는 살라고 있지만,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 제자로서 올바른 삶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번째가, 그리스도 제자로서

올바른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든지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지혜보다

참된 생명으로 이끌어가는 지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을

기울여 깨닫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그리스도 제자로서

올바른 지혜를 가진다는 것은

정직하고 올바른 마음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가운데 15~17절은 이처럼 말씀하십니다.

번역 성경입니다.

v.15,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충고하여라.

그가 너의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를 얻은 것이다.”

 

v.16,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거라.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두세 증인의 입을 빌어서

확정 지으려는 것이다.”

 

v.17, 그러나 형제가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여라.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 사람이나 세리와 같이 여겨라.”

 

오늘 본문을 보시면,

만약 형제 가운데 죄가 있다면

먼저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둘이 있는 자리에서

형제가 죄에서 돌이킬 있도록

정직하고 올바른 마음으로,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충분한 기회를 주라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가장 기본 되는 구조는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은 남편과 아내로 시작합니다.

분명 서로가 더욱 사랑하고,

서로가 더욱 가깝지만,

서로간의 사랑이 식어버리고,

서로간의 믿음이 깨어져 버리면

오히려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가정이 올바른 신앙과 믿음 안에서 세워지면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들은 어느 자리에 있던지

올바른 지혜와 마음을 가지고서 살아갈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둘이 있는 자리에서 서로를 위하여 진실되고

사랑스러운 말로 권면해주고,

좋은 말로 올바른 충고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 안에서 형제들 사이와 자매들 사이에서도

동일합니다.

둘이 있는 자리 가운데서

서로를 위해 권면해주고,

좋은 말로 올바른 충고를 주는 것입니다.

 

더욱이 교회와 다른 모든 장소에서도 마찬가지로

둘이 있는 자리에서 서로를 위해 권면해주고,

 좋은 말로 충고를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고와 노력을 마음으로 뒤에라도

이야기를 듣지 않을 ,

때에는 , 사람을 데리고

함께 찾아가서는 그들의 입을 통해서

다시 권면하고,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그와의 형제적 관계를 끊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단지 내가 정한 한계를 세워놓고

형제의 관계를 끊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마태복음 18 21~22 번역 성경입니다.

v.21, 주님,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v.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당시 문화적, 종교적 배경 가운데서

유대인들은 최대 3번까지 용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용서는

자신들이 정한 횟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없이 해야 한다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도 우리 주위 사람들을 용서할 ,

베드로처럼 상대적 숫자로 헤아려 보는 것으로

멈추고 말아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은

끝없는 용서였습니다.

그러셨기에 세상을 위해 직접 십자가에

자신의 몸에 못을 박으셨습니다.

그리고 보혈을 흘려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거룩하신 생명,

참된 사랑과 용서가

주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임하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올바른 믿음과 신앙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올바른 지혜를 가진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더라도,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드리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쉽게 행동으로 옮길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을 올바로 믿고,

자신의 삶을 주님께 올바로 맡기면서 나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힘과 이해가 아닌,

오직 성령님의 능력으로

용서하며 살아갈 있는 참된 영적 지혜를

가지게 되어서 구원 받은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 속에서의 생각만으로 멈추어 버리는 것이 아닌,

 각자 속에서 행동으로 옮길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도 성령의 능력으로 용서하며 살아갈 있는

참된 영적 지혜를 가지고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면서 예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영적인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시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올바른 지혜를 가지고

서로가 사랑으로 각자의 마음을 풀고,

다시 돌아올 있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올바른 삶이란

진실되고 함께하는 삶입니다.”

 

오늘의 본문 마지막 구절 18 ~ 20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번역 성경입니다.

v.18, 내가 진정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v.19,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v.20, 두세 사람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방금 본문 말씀 가운데 사람

바로 교회의 최소 단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 거듭난 진실된 교인 둘이 있다면

하나의 교회 있습니다.

 

사실 자신의 명목에 따라서 합한 100, 1000, 그리고  명보다는,

마음으로 합한 진실되고 함께하는 사람이

더욱 귀하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르짖음과

간구하는 역사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사실 교회는 누구의 이름으로 모이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100, 1000, 그리고 수만 명이 모였다 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 아니면

교회가 아닙니다.

 

거기다 세상적인 이익과

세상적인 방법을 가지고서 쉬운 일만 하고,

쉬운 길로만 나아가는 것도 교회가 아닙니다.

비록 앞에 놓인 상황과 환경이

힘들고 괴로워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해 버리고 싶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진실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승객들을 태운 비행기가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면서

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았던 기적입니다.

 

사실 미국에선 버드 스트라이크라고 해서 새와 비행기가 충돌하여 발생하는 사고가

일주일에 꼴로 일어나는데,

비행기 좌측, 우측 엔진이 버드 스트라이크로 모두 나가버리게 되었을

기장은 치의 망설임도 없이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시물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허드슨 강이 아닌,

공항으로 회항을 있었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승객 155명이 사람의 사망자도 없이 무사하게

구출될 있었던 것은

기장의 진실되고 빠른 판단 덕이었던 것임을

밝혀지게 됨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사실 성경을 보더라도

죄가 들어왔을

제일 먼저 나타난 행동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자기 자신이 보기에 좋은 것으로만 결정하고,

자기 자신만 사는 것이 그들의 우선 순위였습니다.

예로 아담과 하와의 아들은 하나님께 똑같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첫째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드린 그의 제물을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셨고,

양의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던 아벨의 제물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을 지켜볼

그는 화를 냈고,

안색도 변해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4 6~7 번역입니다.

v.6, 주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v.7,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그런데 머지 않아서 가인은 동생 아벨을

들판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서부터 하나님의 영은

가인에게서 떠나 그는 유목민이 되어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진실되지 못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함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을 통해 믿음을 가지고서,

진실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v.18, 내가 진정으로 너희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v.19, 내가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v.20, 두세 사람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진실되고 함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한다는 것이

모든 것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라는 여자분이 계셨는데,

그녀가 문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던져진 적이 있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낚시바늘이나 토기,

간석기 등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가렛 여사는 문명의 첫번째 징조는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설명합니다.

만약 당신이 동물의 왕국의 주인인데 다리가 부러졌다면, 당신은 죽습니다..

위험으로부터 달아날 수도 없고,

물을 마시러 강에 가거나 사냥을 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그냥 다른 짐승들을 위한 고기일 뿐입니다.

동물은 부러진 다리로 살아남을 없습니다.

하지만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는

누군가가 사람이 치유될 때까지 곁에서

도와주었음을 나타냅니다.

누군가가 곤경에 처했을

사람을 돕는 것이 문명의 시작입니다.”

 

,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서 함께 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돕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 것입니다.

 

사실 진실된 마음,

함께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관용입니다.

 

진실된 마음,

함께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 바로

마귀를 제압하는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통한

용서의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현재 우리들이 세상에서 주님의 귀한 은혜를 체험하면서

주님의 평안함 가운데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서로가 진실되고

서로가 함께 힘써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기억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귀하고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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