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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설교

Wednesday sermons

 

2021.3.17_3월 세 번째 수요 저녁 말씀

 마태복음 21 42< 37>,

v.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그럼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21 42 말씀들을 가지고서

모든 것은 오직 주님께서 하십니다.”

이와 같은 제목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말씀의 귀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포함한 우리의 모든 소유는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삶 자체가 하나님 주신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들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만 여긴다면, 결국 주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주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인간적인 욕심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쓰여진 이 당시의 상황을 본다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타락해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하나님이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백성들의 영적 성숙을 인도할 수 있는 다양한 여건들을 마련해 주셨는데도,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기회와 개인에게 주신 그 은사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그 모든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전혀 상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른 의미로는,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특권과 사명을 함부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을 열심히 믿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모든 노력들을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채우는 것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 이익을 위한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마저 없애 버리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 번역 성경입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집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이다.”

 

사실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기 위해선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믿음이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세우기 위한 올바른 신앙이 가져다 주는 그 열매는 우리가 믿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일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번째로 우리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가장 심플하지만, 가장 큰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부르짖어 기도하고,

은혜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서 기도하고,

믿음으로 모든 환경의 문을 열고서 용감하게 나아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믿음에 응답하시기에,

우리는 기도하고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믿음에 응답하시기 때문에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선 오늘 본문이 표현한 단어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시편 118편인데, 다윗의 감사시입니다.

다윗이 모든 건축자들,

즉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왕과 그의 부하들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쫓겨 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택하여 왕으로 세우심으로써 이스라엘이 나뉘지 않고, 동요하지 않도록 하셨다는 내용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잇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들로부터 학대와 핍박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퉁이의 돌,

즉 선택 받은 민족으로 삼으시고 복 주셨다는 것을 알려주시면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

넓게는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이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 버림을 받은 돌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은 더 없이 중요한 인물이 되셔서 올바른 믿음을 가지게 하심으로

모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다 이루어 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부터 지금까지 올바른 신앙인들,

곧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복되게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내가 원하고 바라던 일들을 하는 것으로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삶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서 행복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삶은 올바른 믿음의 눈을 가지지 못하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있는 그 장소 가운데서 우리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기도를 하려고 하는 그 모습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래 된 한 예화가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Charles George Gorden 장군에 대한 이야기인데, 고든 장군은 자신이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아침 시간을 방해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수단을 여행하고 있는 동안 그가 있는 장소에는 날마다 한 시간씩 하얀 손수건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부대에 속한 모든 장병들은 아무리 긴급한 메시지라도,

더욱이 삶과 죽음에 관계된 것이라도 걸려있는 하얀 손수건이 내려질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장병들은 하얀 손수건을 볼 때마다 고든 장군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욱이 그 하얀 손수건은 두려움을 모르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살았던 그의 성자 같은 삶의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도 전 세계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서 마음이 불안하거나,

혹은 개인적인 일,

곧 가정이나 사업장, 직장 등에 대해 불안감이 있어도 애써 침착함을 보이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오직 우리 주님으로부터 시작되기에 우리들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구세주이심을 확신해야 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참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평안하고 안정된 길로만 나아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때론 괴로움 가운데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현재 주어진 그 상황과 일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올바른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어떤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고정시켜,

주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기 위해 영적으로 항상 깨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무엇보다도 먼저 각자 우리 자신들이 있는 그 위치와 장소 가운데서 잠잠히 기도하며 나아가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에만 너무 치중하다 보면 우리들은 하지 않아도 될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실수는 삶의 방향을 바꿔버리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세상의 구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에게는 필요하지 않는 존재로만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반대로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더 없이 중요한 분이 되셨습니다.

곧 십자가 사건으로 더욱 더 확실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향하여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서로 다른 행동을 했던 것은

바로 자신만의 기준과 지식만을 가지고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 판단했기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행동은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올바른 믿음의 눈을 가지고서 예수님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능력만 믿고 판단해 참된 진리를 버렸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의 건국자가 지은 건물이라 할지라도 기초가 없는 건물은 금방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개인 자신의 머릿돌로 삼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집니다.

영원히 주님의 백성이 되어 주님과 함께합니다.

 

우리에겐 두 눈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보면서 삽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에만 너무 치우쳐 버린다면 영적인 것을 포기해 버리기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믿음과 신앙을 올바로 잘 지켜야 할 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어야 할 때  다가오는 힘들고 괴로운 일들로 인하여 예배를 포기해 버립니다.

 

사실 COVID 19로 인해 우리의 예배 생활은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중심이 예수님으로부터 벗어나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비록 세상 가운데 요구하는 수 많은 것들,

곧 돈과 지식, 학벌과 성공, 그리고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우리 삶의 중심이 항상 예수님 가운데 있을 때에 만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위로함을 경험하게 되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날 우리들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내 필요와 내 이상에 맞추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우리의 필요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주님과 거래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고 바라던 일들을 다 했다고 해서 그 가운데 참된 만족이 있을까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도스토예프스기가 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유명한 대심문관이라는 장이 있습니다.

 

이단을 재판해서 이단으로 판명되면 화형대로 보내는 대심문관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대심문관은 한눈에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경배하기는커녕, 예수님을 가리켜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 없는 존재라며 예수님을 화형시키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예수님이신 줄 알면서도 죽이기로 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돌로 떡덩이를 만들라는 시험을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자유를 감당하지도 못하는 대중에게 먹기 힘든 하늘의 빵을 약속했던 것도 죄라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대중들은 우리를 노예로 삼되 빵을 주시는 편이 낫습니다라고 외칩니다.

결국 주님이 불필요하고 위험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단지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때만 주님을 찾고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욱이 우리의 필요가 채워지고, 우리가 바라던 일들이 해결되었을 때에는 더 이상 찾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비록 우리들 삶 가운데 어쩔 수 없는 상황과 환경을 마주할 때가 많지만 우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고,

절대로 모른 척 하지 않으시는 주님 앞에서 겸손히 회개하면서,

우리 주님을 구원의 반석으로 삼아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두 눈이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에만 따라 살아가지 말고,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을 지라도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우리 삶의 머릿돌,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시작 돌로 삼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때때로 어려움과 괴로움이 있을 지라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 가운데서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흔들리지 않게 되며 예수님 한 분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이 시간, 어떠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던지 모든 일들은 다 주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 자신이 세운 계획들이 있을지라도,

더욱이 세상 가운데서 정한 일들이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단지 우리가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오직 모든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시작하는 확실한 믿음 가운데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각자 우리 자신들이 있는 그 장소 가운데서 기도하시되,

단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치우치지 마시고,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서 주님께 맡기되 현재 각자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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